오늘 소백살롱 3부 '로컬과 AX' 패널로 나간다.
그 전에 임팩트스퀘어 김소선 매니저님과 사전 인터뷰를 한 시간 했는데, 대화가 끝날 때쯤 서로 같은 결론에 도착해 있었다. 그 한 시간을 정리해둔다.
로컬에 AI 이야기를 하러 오는 사람들은 대개 인프라부터 꺼낸다. 데이터센터, 서버, 장비. 근데 나는 로컬에서는 인프라라는 단어부터 다시 정의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 로컬에 없는 인프라는 건물이 아니다. 기록된 지역의 지식과 그걸 모으는 사람이다.
김소선 매니저님도 본인 역시 인프라 하면 하드웨어를 먼저 떠올렸는데, 데이터를 인프라로 놓고 보니 접근 자체가 달라지겠다고 하셨다.
AX는 도구를 사는 일이 아니다
AX는 사실 우리나라에서 유독 많이 쓰는 단어다. 유행어에 가깝다. 그리고 자주 오해된다. AI 도구를 도입하는 일로 읽히니까.
도구가 들어오면 원래 하던 방식을 바꿔야 한다. 그게 본질이다. 농업에서 스마트파밍이 그랬다. 노지에서 데이터를 뽑아야 데이터 기반으로 뭘 할 수 있는데, 그러려면 4~60대 농업인이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일해야 한다. 도구가 어려운 게 아니라 방식을 바꾸는 게 어려운 거다.
AI도 똑같다. 근데 로컬에서 이 논의를 하는 자리를 나는 아직 거의 못 봤다.
곡성에 왔다가 6개월 만에 나간 공유차량 여섯 대
2년 전 곡성에 공유차량 여섯 대가 들어왔다가 6개월 만에 나갔다. 지역 택시조합의 반발이 있었다.
나는 이게 택시조합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술이 없어서 실패한 게 아니라, 기존 사업자의 생존권과 주민의 교통권을 같이 푸는 제도 설계가 없어서 실패한 거다. 공유차량과 택시는 이용 행태도, 시간대도, 고객도 다르다. 곡성 버스는 두 시간에 한 대씩으로 계속 줄고 있고. 두 문제를 같이 푸는 방식이 분명히 있는데, 그 논의를 시작할 자리 자체가 없었다.
로컬 AX의 병목은 대부분 기술이 아니라 제도다.
격차는 규모가 아니라 환경에서 온다
미시적으로 내려가면 더 답답하다. 곡성만이 아니라 전남·광주를 통틀어도 우리만큼 AI를 쓰는 조직을 만나기가 어렵다.
숫자로 보면 이렇다. 작년 조사에서 국민의 44.5%가 생성형 AI를 써봤다. 근데 돈을 내고 쓰는 사람은 7.9%다. 웹에서 채팅으로 쓰는 것과 앱이나 개발 환경에서 쓰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긴데, 로컬은 대부분 그 바깥에 있다.
여기서 반전이 하나 있다. 올해 대한상의 보고서를 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생성형 AI 활용 격차가 13.8%p인데, 회사의 권장이나 비용 지원 같은 환경 요인을 걷어내면 4%p까지 줄어든다. 격차는 규모에서 오는 게 아니라 환경에서 온다. 내 경험담이 아니라 보고서의 결론이다.
그럼 로컬에는 그 환경이 있는가? 지역 교육에 나가보면 답이 그대로 보인다. 기술은 프롬프트를 아예 길게 안 쓰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현장 교육은 아직도 3년 전 '프롬프트 잘 쓰는 법'에 머물러 있다. 학습이 되려면 의지가 있어야 하고, 의지가 생기려면 먼저 불편함을 느껴야 한다. AI가 들어오면 원래 안 불편했던 게 불편해진다.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니까. 그 순서를 건너뛰고 도구부터 넣으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그래서 인프라를 다시 정의해야 한다
로컬에는 아직 데이터가 되지 않은 것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정제하고 가공할 수만 있으면 그걸 재료로 다시 들여다볼 수 있는 문제가 수두룩하다. 나는 그게 있고 없고가 인프라라고 본다.
제일 아픈 장면은 마을이다. 어르신 한 분이 돌아가실 때마다 그 마을의 지식이 통째로 사라진다. 마을 활동가를 그렇게 많이 양성해놓고도 활동은 보고서로 끝나고 데이터로 남지 않는다.
기록되지 않은 활동은 추적할 수 없다.
추적할 수 없는 활동은 개선할 수 없다.
개선할 수 없는 활동은 매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그렇게 지역의 자원이 그냥 소모된다.
그래서 나는 인프라를 이렇게 정의한다. 로컬의 인프라는 대체로 소프트웨어다. 데이터를 수집하는 사람, 그 데이터를 적정한 도구로 연결해주는 리터러시를 가진 퍼실리테이터. 그리고 시군 데이터를 모아보고 개별 지원 포인트를 짚어주는 관제센터 같은 거점이 광역 단위로 하나씩 있어야 한다고 본다. 데이터가 모이면 사람이 원래 못 하던 분석을 AI가 대신 해주니까.
어르신들은 채팅을 못 하신다. 그럼 사람이 AI를 대신해드리면 된다. 조사관이 어르신의 일주일을 마을 활동, 경제 활동, 여가로 나눠 트래킹하면서 데이터를 쌓는 것. 인프라 구축 예산을 잡기 전에 이 일을 할 사람부터 양성하고 파견해야 한다.
"왜 기다려야 하는가"부터 다시 묻기
김소선 매니저님이 다른 연사분께 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나 해주셨다. 버스 도착 정보가 수기로 관리돼 신뢰도가 낮으니 소프트웨어로 만들면 편하겠다 싶었는데, 정작 그 버스를 타시는 할머니들은 30분, 한 시간 늦는 걸 크게 불편해하지 않으시더라는 거다.
그래서 지자체는 정류장에 에어컨을 놓아드렸다고.
외부 시각으로 솔루션부터 들이밀면 이렇게 어긋난다.
근데 AX적인 접근이라면 질문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왜 기다려야 하는가." 그렇게 물으면 답이 여러 갈래로 열린다. 아예 안 기다리게 콜버스로 구조를 바꿀 수도 있고, 도착 시간을 현행화해서 보여줄 수도 있고, 단기적으로는 에어컨이 진짜 답일 수도 있다. 문제를 다시 정의해야 낮은 비용의 답이 보인다.
지역화폐도 같다. 지역 상품권 따로, 공용 지역화폐 따로, 포스 매출 따로. 소상공인이 이 관리에 돈과 시간을 쓴다. 데이터가 잡히는 일이라 올인원 소프트웨어를 아주 싸게 만들 수 있는데 아무도 안 만든다.(전통시장에서 매대 받아 장사하시는 어르신들은 아예 이 체계 바깥에 계시고..) 이제는 풀 수 있는 문제들이다.
곡성에서 해보고 있는 것
작년 연초부터 전 크루가 8주 동안 AI에게 일을 시키는 법을 배웠다. 그랬더니 "이것도 자동화 안 돼요?"라는 요청이 조직 안에서 스스로 자라났고, 그게 쌓여서 지금은 우리 전용 AI 동료가 슬랙에서 전 크루와 함께 일한다.매일의 대화와 회의와 결정이 자동으로 조직 위키에 쌓인다. 재밌는 건 "AI가 찾을 수 있게 기록하자"는 팀 규칙이 생기면서 기록 문화 자체가 바뀌었다는 거다.
지금은 이걸 지역에 반복하고 있다. 곡성에서 열고 있는 AI 교육 캠프에는 수도권에서 4박 5일씩 내려와 자기 문제를 풀고 가는 분들이 많다. 교육 원칙은 하나다. AI 사용법이 아니라 문제를 정의하는 법을 가르친다. 시간의 80%를 문제 정의에 쓰고, 개발은 20%도 안 걸린다. 수료 기준도 발표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실제로 돌아가는 결과물이다.
지난 캠프에는 회계 사무소에서 일하시는 세 분이 오셨다. 부가세·종소세 신고 기간에 수기로만 하던 단계들이 있었는데, 한 사람이 100~200건씩 맡다 보니 하나가 바뀌면 진행 현황을 알 수가 없어 일일이 찾아봐야 하는 구조였다. 그걸 자동화해서, 다른 회계 사무소에서도 클릭 한 번으로 쓸 수 있는 배포안까지 만들고 가셨다.
그리고 우리 교육에는 기록봇이 뒤에서 돈다. 참가자가 어떻게 문제를 정의했고, 원래 워크플로우가 어땠고, 어떻게 풀었는지가 전수 기록된다. 교육 자체가 지역 문제 데이터를 수집하는 장치인 셈이다. 우리에게 교육과 데이터 인프라는 별개 사업이 아니라 하나다.
공공에 제안하고 싶은 세 가지
1. 내부 행정 전산망의 규제 샌드박스
군 단위 공무원 한 분이 사업을 십수 개씩 맡고 한글 문서 타이핑에 시간을 쓴다. 기술적으로는 이미 자동화가 되는데 상위 법령과 보안망 때문에 막혀 있다. 그리고 현장에서는 이미 다들 우회한다. 개인 컴퓨터에서 작업해서 메일로 보내놓고 보안망에 들어가 옮겨 붙이는 식으로. 막아서 안 쓰는 게 아니라, 막아서 더 위험하게 쓰고 있는 거다.
제한된 영역에서 외부 서버 가동을 허용하는 민관 실증부터 열자는 이야기다. 실증특례라는 방식 자체는 이미 열리고 있다. 전남과 광주가 중심인 스마트농업 규제자유특구도 이번에 지정됐고. 트랙터에는 실증특례가 열리는데, 행정망에는 아직 없다.
2. 데이터 조사관 양성·파견 사업
인프라 구축 예산을 잡기 전에, 지역의 활동과 자원을 데이터로 남기는 전수조사형 인력부터 만들자는 거다. 김소선 매니저님도 행안부 관계자와 나눈 대화를 들려주셨는데, 지방소멸대응기금으로 사업을 발굴하려 해도 현장 데이터를 충분히 가진 사람이 없어서 유의미한 발굴이 안 되고 기금 매칭까지 막힌다고 하시더라. 같은 이야기다.
3. 사례 레퍼런스의 공공데이터화
어느 지자체에선가 같은 문제를 기막히게 푼 곳이 분명 있다. 근데 기록이 현행화되지 않았거나 단절돼 있어서 아무도 못 찾는다. AI 검색으로도 안 나온다. 애초에 기록이 없으니까. 실패 사례도 데이터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면, 로컬을 하나의 도메인으로 보는 평가 시장이 열릴 수 있다고 본다. AI가 내놓은 답을 도메인 전문가가 평가하는 시장이 이미 만들어지고 있고, 제조업은 벌써 하고 있다. 지역에서 오래 도전해온 사람들이 로컬 도메인의 평가자가 되면, 성공이든 실패든 현장 경험이 소득이 되면서 공공 데이터가 좋아지는 선순환이 생긴다. 여기까지가 내 상상이다.
결과물이 남는 자리
인터뷰 끝에 김소선 매니저님이 물으셨다. 해커톤을 한다면 같은 지역 사람끼리 모이는 게 나은지, 여러 지역이 섞이는 게 나은지.
나는 섞이는 쪽이 더 재밌을 거라고 답했다. 문제 인식은 지역이 달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건 해결하는 방식이다. 각 지역의 고유한 조건 때문에 결과물이 달라진다. 그 서로 다른 결과물을 놓고 토론하는 세션이 열린다면, 그때야말로 AX가 로컬·사회혁신과 제대로 맞물리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보통 이런 자리를 발제하고 정리하고 후기 남기는 걸로 마친다. 그러지 말고 결과물이 남는 방식으로 가면 어떨까. 주최하는 입장에서도 다양한 문제를 한 번에 수집하게 되고, 그 자체가 로컬의 문제를 어떻게 풀고 있는가에 대한 데이터가 된다.
문제 정의가 될까를 묻는 대신, 문제 정의를 어떻게 할까로 질문을 옮기는 것. 그게 로컬 AX의 출발점이다.
+ 로컬과 인구소멸을 이야기하면서 서울 성수동에 모이는건 그만하면 좋겠다 ㅋㅋㅋ
한 시간 인터뷰했는데 정리하는 데 그 몇 배가 걸렸다.. 근데 정리해두니 다음 주 패널에서 할 말이 명확해졌다. 역시 기록해야 한다니까. 크루들도 요즘 하는 고민들 좀 기록해두면 좋겠다. 나중에 다 쓸데가 있다구!
오늘 소백살롱 3부 '로컬과 AX' 패널로 나간다.
그 전에 임팩트스퀘어 김소선 매니저님과 사전 인터뷰를 한 시간 했는데, 대화가 끝날 때쯤 서로 같은 결론에 도착해 있었다. 그 한 시간을 정리해둔다.
로컬에 AI 이야기를 하러 오는 사람들은 대개 인프라부터 꺼낸다. 데이터센터, 서버, 장비. 근데 나는 로컬에서는 인프라라는 단어부터 다시 정의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 로컬에 없는 인프라는 건물이 아니다. 기록된 지역의 지식과 그걸 모으는 사람이다.
김소선 매니저님도 본인 역시 인프라 하면 하드웨어를 먼저 떠올렸는데, 데이터를 인프라로 놓고 보니 접근 자체가 달라지겠다고 하셨다.
AX는 도구를 사는 일이 아니다
AX는 사실 우리나라에서 유독 많이 쓰는 단어다. 유행어에 가깝다. 그리고 자주 오해된다. AI 도구를 도입하는 일로 읽히니까.
도구가 들어오면 원래 하던 방식을 바꿔야 한다. 그게 본질이다. 농업에서 스마트파밍이 그랬다. 노지에서 데이터를 뽑아야 데이터 기반으로 뭘 할 수 있는데, 그러려면 4~60대 농업인이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일해야 한다. 도구가 어려운 게 아니라 방식을 바꾸는 게 어려운 거다.
AI도 똑같다. 근데 로컬에서 이 논의를 하는 자리를 나는 아직 거의 못 봤다.
곡성에 왔다가 6개월 만에 나간 공유차량 여섯 대
2년 전 곡성에 공유차량 여섯 대가 들어왔다가 6개월 만에 나갔다. 지역 택시조합의 반발이 있었다.
나는 이게 택시조합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술이 없어서 실패한 게 아니라, 기존 사업자의 생존권과 주민의 교통권을 같이 푸는 제도 설계가 없어서 실패한 거다. 공유차량과 택시는 이용 행태도, 시간대도, 고객도 다르다. 곡성 버스는 두 시간에 한 대씩으로 계속 줄고 있고. 두 문제를 같이 푸는 방식이 분명히 있는데, 그 논의를 시작할 자리 자체가 없었다.
로컬 AX의 병목은 대부분 기술이 아니라 제도다.
격차는 규모가 아니라 환경에서 온다
미시적으로 내려가면 더 답답하다. 곡성만이 아니라 전남·광주를 통틀어도 우리만큼 AI를 쓰는 조직을 만나기가 어렵다.
숫자로 보면 이렇다. 작년 조사에서 국민의 44.5%가 생성형 AI를 써봤다. 근데 돈을 내고 쓰는 사람은 7.9%다. 웹에서 채팅으로 쓰는 것과 앱이나 개발 환경에서 쓰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긴데, 로컬은 대부분 그 바깥에 있다.
여기서 반전이 하나 있다. 올해 대한상의 보고서를 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생성형 AI 활용 격차가 13.8%p인데, 회사의 권장이나 비용 지원 같은 환경 요인을 걷어내면 4%p까지 줄어든다. 격차는 규모에서 오는 게 아니라 환경에서 온다. 내 경험담이 아니라 보고서의 결론이다.
그럼 로컬에는 그 환경이 있는가? 지역 교육에 나가보면 답이 그대로 보인다. 기술은 프롬프트를 아예 길게 안 쓰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현장 교육은 아직도 3년 전 '프롬프트 잘 쓰는 법'에 머물러 있다. 학습이 되려면 의지가 있어야 하고, 의지가 생기려면 먼저 불편함을 느껴야 한다. AI가 들어오면 원래 안 불편했던 게 불편해진다.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니까. 그 순서를 건너뛰고 도구부터 넣으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그래서 인프라를 다시 정의해야 한다
로컬에는 아직 데이터가 되지 않은 것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정제하고 가공할 수만 있으면 그걸 재료로 다시 들여다볼 수 있는 문제가 수두룩하다. 나는 그게 있고 없고가 인프라라고 본다.
제일 아픈 장면은 마을이다. 어르신 한 분이 돌아가실 때마다 그 마을의 지식이 통째로 사라진다. 마을 활동가를 그렇게 많이 양성해놓고도 활동은 보고서로 끝나고 데이터로 남지 않는다.
기록되지 않은 활동은 추적할 수 없다.
추적할 수 없는 활동은 개선할 수 없다.
개선할 수 없는 활동은 매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그렇게 지역의 자원이 그냥 소모된다.
그래서 나는 인프라를 이렇게 정의한다. 로컬의 인프라는 대체로 소프트웨어다. 데이터를 수집하는 사람, 그 데이터를 적정한 도구로 연결해주는 리터러시를 가진 퍼실리테이터. 그리고 시군 데이터를 모아보고 개별 지원 포인트를 짚어주는 관제센터 같은 거점이 광역 단위로 하나씩 있어야 한다고 본다. 데이터가 모이면 사람이 원래 못 하던 분석을 AI가 대신 해주니까.
어르신들은 채팅을 못 하신다. 그럼 사람이 AI를 대신해드리면 된다. 조사관이 어르신의 일주일을 마을 활동, 경제 활동, 여가로 나눠 트래킹하면서 데이터를 쌓는 것. 인프라 구축 예산을 잡기 전에 이 일을 할 사람부터 양성하고 파견해야 한다.
"왜 기다려야 하는가"부터 다시 묻기
김소선 매니저님이 다른 연사분께 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나 해주셨다. 버스 도착 정보가 수기로 관리돼 신뢰도가 낮으니 소프트웨어로 만들면 편하겠다 싶었는데, 정작 그 버스를 타시는 할머니들은 30분, 한 시간 늦는 걸 크게 불편해하지 않으시더라는 거다.
그래서 지자체는 정류장에 에어컨을 놓아드렸다고.
외부 시각으로 솔루션부터 들이밀면 이렇게 어긋난다.
근데 AX적인 접근이라면 질문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왜 기다려야 하는가." 그렇게 물으면 답이 여러 갈래로 열린다. 아예 안 기다리게 콜버스로 구조를 바꿀 수도 있고, 도착 시간을 현행화해서 보여줄 수도 있고, 단기적으로는 에어컨이 진짜 답일 수도 있다. 문제를 다시 정의해야 낮은 비용의 답이 보인다.
지역화폐도 같다. 지역 상품권 따로, 공용 지역화폐 따로, 포스 매출 따로. 소상공인이 이 관리에 돈과 시간을 쓴다. 데이터가 잡히는 일이라 올인원 소프트웨어를 아주 싸게 만들 수 있는데 아무도 안 만든다.(전통시장에서 매대 받아 장사하시는 어르신들은 아예 이 체계 바깥에 계시고..) 이제는 풀 수 있는 문제들이다.
곡성에서 해보고 있는 것
작년 연초부터 전 크루가 8주 동안 AI에게 일을 시키는 법을 배웠다. 그랬더니 "이것도 자동화 안 돼요?"라는 요청이 조직 안에서 스스로 자라났고, 그게 쌓여서 지금은 우리 전용 AI 동료가 슬랙에서 전 크루와 함께 일한다.매일의 대화와 회의와 결정이 자동으로 조직 위키에 쌓인다. 재밌는 건 "AI가 찾을 수 있게 기록하자"는 팀 규칙이 생기면서 기록 문화 자체가 바뀌었다는 거다.
지금은 이걸 지역에 반복하고 있다. 곡성에서 열고 있는 AI 교육 캠프에는 수도권에서 4박 5일씩 내려와 자기 문제를 풀고 가는 분들이 많다. 교육 원칙은 하나다. AI 사용법이 아니라 문제를 정의하는 법을 가르친다. 시간의 80%를 문제 정의에 쓰고, 개발은 20%도 안 걸린다. 수료 기준도 발표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실제로 돌아가는 결과물이다.
지난 캠프에는 회계 사무소에서 일하시는 세 분이 오셨다. 부가세·종소세 신고 기간에 수기로만 하던 단계들이 있었는데, 한 사람이 100~200건씩 맡다 보니 하나가 바뀌면 진행 현황을 알 수가 없어 일일이 찾아봐야 하는 구조였다. 그걸 자동화해서, 다른 회계 사무소에서도 클릭 한 번으로 쓸 수 있는 배포안까지 만들고 가셨다.
그리고 우리 교육에는 기록봇이 뒤에서 돈다. 참가자가 어떻게 문제를 정의했고, 원래 워크플로우가 어땠고, 어떻게 풀었는지가 전수 기록된다. 교육 자체가 지역 문제 데이터를 수집하는 장치인 셈이다. 우리에게 교육과 데이터 인프라는 별개 사업이 아니라 하나다.
공공에 제안하고 싶은 세 가지
1. 내부 행정 전산망의 규제 샌드박스
군 단위 공무원 한 분이 사업을 십수 개씩 맡고 한글 문서 타이핑에 시간을 쓴다. 기술적으로는 이미 자동화가 되는데 상위 법령과 보안망 때문에 막혀 있다. 그리고 현장에서는 이미 다들 우회한다. 개인 컴퓨터에서 작업해서 메일로 보내놓고 보안망에 들어가 옮겨 붙이는 식으로. 막아서 안 쓰는 게 아니라, 막아서 더 위험하게 쓰고 있는 거다.
제한된 영역에서 외부 서버 가동을 허용하는 민관 실증부터 열자는 이야기다. 실증특례라는 방식 자체는 이미 열리고 있다. 전남과 광주가 중심인 스마트농업 규제자유특구도 이번에 지정됐고. 트랙터에는 실증특례가 열리는데, 행정망에는 아직 없다.
2. 데이터 조사관 양성·파견 사업
인프라 구축 예산을 잡기 전에, 지역의 활동과 자원을 데이터로 남기는 전수조사형 인력부터 만들자는 거다. 김소선 매니저님도 행안부 관계자와 나눈 대화를 들려주셨는데, 지방소멸대응기금으로 사업을 발굴하려 해도 현장 데이터를 충분히 가진 사람이 없어서 유의미한 발굴이 안 되고 기금 매칭까지 막힌다고 하시더라. 같은 이야기다.
3. 사례 레퍼런스의 공공데이터화
어느 지자체에선가 같은 문제를 기막히게 푼 곳이 분명 있다. 근데 기록이 현행화되지 않았거나 단절돼 있어서 아무도 못 찾는다. AI 검색으로도 안 나온다. 애초에 기록이 없으니까. 실패 사례도 데이터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면, 로컬을 하나의 도메인으로 보는 평가 시장이 열릴 수 있다고 본다. AI가 내놓은 답을 도메인 전문가가 평가하는 시장이 이미 만들어지고 있고, 제조업은 벌써 하고 있다. 지역에서 오래 도전해온 사람들이 로컬 도메인의 평가자가 되면, 성공이든 실패든 현장 경험이 소득이 되면서 공공 데이터가 좋아지는 선순환이 생긴다. 여기까지가 내 상상이다.
결과물이 남는 자리
인터뷰 끝에 김소선 매니저님이 물으셨다. 해커톤을 한다면 같은 지역 사람끼리 모이는 게 나은지, 여러 지역이 섞이는 게 나은지.
나는 섞이는 쪽이 더 재밌을 거라고 답했다. 문제 인식은 지역이 달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건 해결하는 방식이다. 각 지역의 고유한 조건 때문에 결과물이 달라진다. 그 서로 다른 결과물을 놓고 토론하는 세션이 열린다면, 그때야말로 AX가 로컬·사회혁신과 제대로 맞물리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보통 이런 자리를 발제하고 정리하고 후기 남기는 걸로 마친다. 그러지 말고 결과물이 남는 방식으로 가면 어떨까. 주최하는 입장에서도 다양한 문제를 한 번에 수집하게 되고, 그 자체가 로컬의 문제를 어떻게 풀고 있는가에 대한 데이터가 된다.
문제 정의가 될까를 묻는 대신, 문제 정의를 어떻게 할까로 질문을 옮기는 것. 그게 로컬 AX의 출발점이다.
+ 로컬과 인구소멸을 이야기하면서 서울 성수동에 모이는건 그만하면 좋겠다 ㅋㅋㅋ
한 시간 인터뷰했는데 정리하는 데 그 몇 배가 걸렸다.. 근데 정리해두니 다음 주 패널에서 할 말이 명확해졌다. 역시 기록해야 한다니까. 크루들도 요즘 하는 고민들 좀 기록해두면 좋겠다. 나중에 다 쓸데가 있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