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도는 참으로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물론 오늘을 보내고 있는 우리는 무엇이 바뀌었는지 아직은 실감이 되지 않을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21년도의 실패에 따라 팜앤디 리빌딩을 거치게 되었고 그에따라 팜앤디의 미래와 우리가 하는일이 바뀌었고 이것을 체감하게 될 것이란 거다. 회사든, 사회든, 국가든, 개인이든 간에 "성공과 실패"에 따라 계속해서 바뀌어 나간다. 그리고 나는 실패를 통해 여러가지 생각들이 많이 바뀌었고 중요하게 보는 것들 또한 바뀌었다.
21년도 나에게 있어 가장 큰 실패는 2가지였다. 첫째는 사업 통합화의 실패였고 둘째는 자금난에 따른 비상경영 돌입이다. 이 두가지 실패는 나를 많이 바꿔놓았다. 아마도 뭐가 바뀐지 아직 잘 모르는 크루들도 있을 수 있고, 혹은 별 관심이 없을 수도 있고(?) 그렇다. 하지만 이건 나에게는 정말 큰 변화이고 함께 일하는 크루들도 알면 좋을 것 같아서 오늘 끄적끄적 크루피셜을 적어보고자 한다.
먼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제목처럼 실패를 받아들이는 것은 힘들다는 것이다. 그나마 위로를 얻는 것은, 실패를 했다는 거다. 즉 무엇인가 액션을 했고 결과를 봤다는 뜻이다. 그 결과는 실패였지만.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혼동하는게 있는데 '실패할까봐 어떤 액션들에 있어서 의도적인 축소나 혹은 액션을 아예 하지 않고 실패했다고 하는 것'을 마치 성공이냐 실패냐를 확인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하는 자기합리화와 동일시 한다는 거다.
실패라는 것은 정말이지 무수하게 일어난다. 너무나도 빈번해서 실패가 거듭될수록, 액션은 축소되고 의미를 잃고 만다. 그리고 그렇게 정말로 재기할 수 없는, 다시는 일어날 수 없는, 함께 실패를 다시 겪을 동료들이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이것은 반대로 우리가 어떻게 실패를 관리해야 하는가를 단순하게 답을 내릴 수 있다는 뜻이다.
빈번하게 실패가 거듭될수록, 우리의 액션은 과감하면서도 정제되어야 하고 더 강한 의미를 가진 액션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반복하기 위해서 동료들과 함께 의기투합하기 위한 여러 활동을 동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함께했더라도, 참여가 적었다면 그부분은 추후 성공하였을 때 응당 차별적으로 보상받아야 하고.
그렇다. 21년도에 사업 통합화에서 실패를 겪으면서 나는 '모두가 함께'라는 의미를 다르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모두가 함께 했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가 똑같이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했다. 단순하게 예를 들면, 우리 모두가 팜앤디 정책을 만들고 다듬고 그 안에서 정책을 실행하는 주체들이다. 다만 만드는 과정에 그리고 참여하는 과정에 개개인의 참여 편차가 존재한다. 우리 모두가 팜앤디 정책에 참여하고 있으나 실제 그 비중편차는 개개인마다 크고 작음이 있다. 이는 곧 평가에 직결되고, 반영되어 차등 보상되어야 마땅하다. 업무 성과도 같다. 모두가 일하고 있지만, 어떻게 일하느냐. 얼만큼 임팩트를 내느냐에 따라 응당 차등 보상되어야 마땅하다. 들인 시간, 함께한 시간 등은 성과 지표에 있지 않다. 목적과 목표에 맞게 임팩트하게 개인이 시간을 썼다면 성과나 원하는 결과는 따라온다. 그 뿐이다.
이번달(3월)에 정책체계가 재확립되고 그에 따른 정책평가체계가 수립된다. 또한 개인과 팀에 대한 성과평가체계가 확립되고 그에 따른 보상체계가 수립된다. 팜앤디는 항상 공동체 정신을 강조해왔다. 그리고 지금 팜앤디는 빠른 실행과 빠른 성과를 반복해야 한다. 즉 성과주의가 필요하다. 굳이 비율로 따지자면 성과주의와 공동체 정신이 7:3의 비율로 자리를 잡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그렇게 조정 및 조성 중이다.
그리고 사업 통합화에 실패를 겪으며 사람을 신뢰하는 나의 방식이 바뀌었다. 나는 원래 100점이 만점이라면, 타인에게 만점이라는 신뢰도를 먼저 주고 깎는 신뢰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지금은 50점 정도에서 출발하고, 신뢰를 쌓아가는 형태로 신뢰하는 방식이 바뀌었다. 여기에는 핏체크라는 단어가 적용된다. 핏이 맞지 않다면, 얼마나 오래 일했고 어떤 역할을 하고 있으며 무슨 관계이든 중요하지 않다. 이는 나 또한 마찬가지다. 나도 팜앤디에 비추어 핏이 맞지 않다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
즉 항상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추적하고 관찰하는 습관이 더 강해졌다. 나도 모르게 항상 평가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여러 플랜들을 짜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 테스크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실패를 받아들이고 나서 생긴 첫번째 액션이다.
자금난에 따른 비상경영 돌입은 경영자로써 꽤나 큰 충격이였고 그 심리적 압박감과 부담감. 좌절감. 수치심 등은 어떻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끔찍했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그리고 그 과정들을 겪으면서 나는 냉정함, 냉철함, 단호함, 확실함 등을 가져야 했다. 그리고 확실한 결정권을 행사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하는 직무가 대표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원래 나는 누구나 모두 대표가 될 수 있고, 리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누구나 대표가 될 수 있으나 좋은 대표가 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좋은 대표라는 것은 크루 개인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다. 좋은 대표는 회사가 생존하고 성장해나가는데 있어서 좋은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뜻한다. 회사가 절대로 모두에게 좋은 회사가 될 수 없듯이, 대표 또한 절대로 모두에게 좋은 대표가 될 수 없다. 모두에게 좋은 대표가 되고자 노력한다면 어느 순간 그 모두가 회사를 나가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될 수 있다.
리소스를 철저하게 관리하고 이를 각 사업 영역에서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곳에 투입하고 리소스 대비 최적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운영해야 한다. 그것에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대표가 가지는 기본적인 HR 업무를 보태는 것이다. 이것은 근데 생각보다 많이 어렵더라. 배워야 하는게 많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개선해야 한다. 왜냐하면, 설득을 기본으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강제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더 멀리, 그리고 더 깊이 사업들을 들여다 봐야 하고 항상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
위에서 말한 좋은 대표가 되기 위해 나를 바꾸는 작업은 팜앤디 리빌딩에 착수한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근데 요즘 내가 겪는 문제는 의심이다. 의심에는 크루에 대한 의심과 사업과정에서 나오는 시그널들에 대한 의심으로 나뉜다. 크루에 대한 의심은 이 사람이 본인의 시간 리소스를 최적의 업무에 쏟고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고, 시그널들에 대한 의심은 이것이 과연 성장과 생존에 있어서 정말로 중요하고 필요한 시그널인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의심은 필요하다. 하지만 '적정한 수준의 의심'이 필요하다. 의심이 과하거나 적으면 필연적으로 문제는 발생한다. 이 문제는 적정한 의심을 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불필요한 문제라는 거다.
그리고 이 문제의 진짜 문제는 적정한 의심을 가지는게 너무너무너무너무 어렵다는 거다. 의심이 과해진 날에는 잠을 못잔다. 머리가 64기가 램을 단 컴퓨터 마냥 쌩쌩 돌아간다. 늦은 밤 머리속에서 뇌 돌아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이다. 의심이 적은 날에는 뭔가 불안하다. 내가 뭔가 놓치고 있는 것 같다. 괜시리 이곳저곳 여러 정보들을 뒤늦게 확인하기 시작한다. 매우 비효율적인 시간 낭비가 발생한다.
즉 적정한 의심의 과정 속에서 냉정함과 냉철함, 단호함, 확실함 등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좋은 대표가 되고자 필요한 액션들을 하고 있다. 이것은 내가 실패를 받아들이고 나서 생긴 두번째 액션이다.
지금의 실패가 더이상 재기할 수 없는 실패가 되는 것을 끊어내기 위해 큰 결단을 했던 21년도 9월 이후 아직도 우리는 여러가지 실패들을 겪고 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실패들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이것이 두렵다. 실패를 다시 겪을까봐, 전에 겪었던 상황들을 내가 다시 마주하게 될까봐 겁이 난다. 하지만 두려워도 걷고 있다. 아직은 함께 실패를 또다시 겪을 수 있는 동료들이 있으니까. 그리고 그 동료들을 위해서 단호하게 그 두려움 속에 한발자국이라도 더 먼저 내딛고자 용기를 낼 뿐이다.
팜앤디의 사업이 실패하더라도, 조직은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개인은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내 직무의 역할 중 하나이다. 나는 이 역할을 담당하며 성과를 낼 것이다.
21년도는 참으로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물론 오늘을 보내고 있는 우리는 무엇이 바뀌었는지 아직은 실감이 되지 않을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21년도의 실패에 따라 팜앤디 리빌딩을 거치게 되었고 그에따라 팜앤디의 미래와 우리가 하는일이 바뀌었고 이것을 체감하게 될 것이란 거다. 회사든, 사회든, 국가든, 개인이든 간에 "성공과 실패"에 따라 계속해서 바뀌어 나간다. 그리고 나는 실패를 통해 여러가지 생각들이 많이 바뀌었고 중요하게 보는 것들 또한 바뀌었다.
21년도 나에게 있어 가장 큰 실패는 2가지였다. 첫째는 사업 통합화의 실패였고 둘째는 자금난에 따른 비상경영 돌입이다. 이 두가지 실패는 나를 많이 바꿔놓았다. 아마도 뭐가 바뀐지 아직 잘 모르는 크루들도 있을 수 있고, 혹은 별 관심이 없을 수도 있고(?) 그렇다. 하지만 이건 나에게는 정말 큰 변화이고 함께 일하는 크루들도 알면 좋을 것 같아서 오늘 끄적끄적 크루피셜을 적어보고자 한다.
먼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제목처럼 실패를 받아들이는 것은 힘들다는 것이다. 그나마 위로를 얻는 것은, 실패를 했다는 거다. 즉 무엇인가 액션을 했고 결과를 봤다는 뜻이다. 그 결과는 실패였지만.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혼동하는게 있는데 '실패할까봐 어떤 액션들에 있어서 의도적인 축소나 혹은 액션을 아예 하지 않고 실패했다고 하는 것'을 마치 성공이냐 실패냐를 확인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하는 자기합리화와 동일시 한다는 거다.
실패라는 것은 정말이지 무수하게 일어난다. 너무나도 빈번해서 실패가 거듭될수록, 액션은 축소되고 의미를 잃고 만다. 그리고 그렇게 정말로 재기할 수 없는, 다시는 일어날 수 없는, 함께 실패를 다시 겪을 동료들이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이것은 반대로 우리가 어떻게 실패를 관리해야 하는가를 단순하게 답을 내릴 수 있다는 뜻이다.
빈번하게 실패가 거듭될수록, 우리의 액션은 과감하면서도 정제되어야 하고 더 강한 의미를 가진 액션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반복하기 위해서 동료들과 함께 의기투합하기 위한 여러 활동을 동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함께했더라도, 참여가 적었다면 그부분은 추후 성공하였을 때 응당 차별적으로 보상받아야 하고.
그렇다. 21년도에 사업 통합화에서 실패를 겪으면서 나는 '모두가 함께'라는 의미를 다르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모두가 함께 했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가 똑같이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했다. 단순하게 예를 들면, 우리 모두가 팜앤디 정책을 만들고 다듬고 그 안에서 정책을 실행하는 주체들이다. 다만 만드는 과정에 그리고 참여하는 과정에 개개인의 참여 편차가 존재한다. 우리 모두가 팜앤디 정책에 참여하고 있으나 실제 그 비중편차는 개개인마다 크고 작음이 있다. 이는 곧 평가에 직결되고, 반영되어 차등 보상되어야 마땅하다. 업무 성과도 같다. 모두가 일하고 있지만, 어떻게 일하느냐. 얼만큼 임팩트를 내느냐에 따라 응당 차등 보상되어야 마땅하다. 들인 시간, 함께한 시간 등은 성과 지표에 있지 않다. 목적과 목표에 맞게 임팩트하게 개인이 시간을 썼다면 성과나 원하는 결과는 따라온다. 그 뿐이다.
이번달(3월)에 정책체계가 재확립되고 그에 따른 정책평가체계가 수립된다. 또한 개인과 팀에 대한 성과평가체계가 확립되고 그에 따른 보상체계가 수립된다. 팜앤디는 항상 공동체 정신을 강조해왔다. 그리고 지금 팜앤디는 빠른 실행과 빠른 성과를 반복해야 한다. 즉 성과주의가 필요하다. 굳이 비율로 따지자면 성과주의와 공동체 정신이 7:3의 비율로 자리를 잡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그렇게 조정 및 조성 중이다.
그리고 사업 통합화에 실패를 겪으며 사람을 신뢰하는 나의 방식이 바뀌었다. 나는 원래 100점이 만점이라면, 타인에게 만점이라는 신뢰도를 먼저 주고 깎는 신뢰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지금은 50점 정도에서 출발하고, 신뢰를 쌓아가는 형태로 신뢰하는 방식이 바뀌었다. 여기에는 핏체크라는 단어가 적용된다. 핏이 맞지 않다면, 얼마나 오래 일했고 어떤 역할을 하고 있으며 무슨 관계이든 중요하지 않다. 이는 나 또한 마찬가지다. 나도 팜앤디에 비추어 핏이 맞지 않다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
즉 항상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추적하고 관찰하는 습관이 더 강해졌다. 나도 모르게 항상 평가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여러 플랜들을 짜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 테스크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실패를 받아들이고 나서 생긴 첫번째 액션이다.
자금난에 따른 비상경영 돌입은 경영자로써 꽤나 큰 충격이였고 그 심리적 압박감과 부담감. 좌절감. 수치심 등은 어떻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끔찍했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그리고 그 과정들을 겪으면서 나는 냉정함, 냉철함, 단호함, 확실함 등을 가져야 했다. 그리고 확실한 결정권을 행사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하는 직무가 대표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원래 나는 누구나 모두 대표가 될 수 있고, 리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누구나 대표가 될 수 있으나 좋은 대표가 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좋은 대표라는 것은 크루 개인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다. 좋은 대표는 회사가 생존하고 성장해나가는데 있어서 좋은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뜻한다. 회사가 절대로 모두에게 좋은 회사가 될 수 없듯이, 대표 또한 절대로 모두에게 좋은 대표가 될 수 없다. 모두에게 좋은 대표가 되고자 노력한다면 어느 순간 그 모두가 회사를 나가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될 수 있다.
리소스를 철저하게 관리하고 이를 각 사업 영역에서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곳에 투입하고 리소스 대비 최적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운영해야 한다. 그것에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대표가 가지는 기본적인 HR 업무를 보태는 것이다. 이것은 근데 생각보다 많이 어렵더라. 배워야 하는게 많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개선해야 한다. 왜냐하면, 설득을 기본으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강제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더 멀리, 그리고 더 깊이 사업들을 들여다 봐야 하고 항상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
위에서 말한 좋은 대표가 되기 위해 나를 바꾸는 작업은 팜앤디 리빌딩에 착수한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근데 요즘 내가 겪는 문제는 의심이다. 의심에는 크루에 대한 의심과 사업과정에서 나오는 시그널들에 대한 의심으로 나뉜다. 크루에 대한 의심은 이 사람이 본인의 시간 리소스를 최적의 업무에 쏟고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고, 시그널들에 대한 의심은 이것이 과연 성장과 생존에 있어서 정말로 중요하고 필요한 시그널인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의심은 필요하다. 하지만 '적정한 수준의 의심'이 필요하다. 의심이 과하거나 적으면 필연적으로 문제는 발생한다. 이 문제는 적정한 의심을 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불필요한 문제라는 거다.
그리고 이 문제의 진짜 문제는 적정한 의심을 가지는게 너무너무너무너무 어렵다는 거다. 의심이 과해진 날에는 잠을 못잔다. 머리가 64기가 램을 단 컴퓨터 마냥 쌩쌩 돌아간다. 늦은 밤 머리속에서 뇌 돌아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이다. 의심이 적은 날에는 뭔가 불안하다. 내가 뭔가 놓치고 있는 것 같다. 괜시리 이곳저곳 여러 정보들을 뒤늦게 확인하기 시작한다. 매우 비효율적인 시간 낭비가 발생한다.
즉 적정한 의심의 과정 속에서 냉정함과 냉철함, 단호함, 확실함 등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좋은 대표가 되고자 필요한 액션들을 하고 있다. 이것은 내가 실패를 받아들이고 나서 생긴 두번째 액션이다.
지금의 실패가 더이상 재기할 수 없는 실패가 되는 것을 끊어내기 위해 큰 결단을 했던 21년도 9월 이후 아직도 우리는 여러가지 실패들을 겪고 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실패들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이것이 두렵다. 실패를 다시 겪을까봐, 전에 겪었던 상황들을 내가 다시 마주하게 될까봐 겁이 난다. 하지만 두려워도 걷고 있다. 아직은 함께 실패를 또다시 겪을 수 있는 동료들이 있으니까. 그리고 그 동료들을 위해서 단호하게 그 두려움 속에 한발자국이라도 더 먼저 내딛고자 용기를 낼 뿐이다.
팜앤디의 사업이 실패하더라도, 조직은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개인은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내 직무의 역할 중 하나이다. 나는 이 역할을 담당하며 성과를 낼 것이다.